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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삶

115_I reckon — when I count it all — by Emily Dick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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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은 유복하고 교양있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평생을 고독하게 시만 쓰다가 서른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려 1775편의 시와 1049편의 산문과 편지를 남길 정도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지만, 살아 생전에 출판된 글은 겨우 10개에 불과했습니다. 생전에는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자신이 원했던 노바디의 삶을 충분히 즐겼던 것일까요? 진짜로 행복했을까요? 시 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 그녀의 목소리로 들어보세요. 오늘 시는 상대적으로 조금 기네요.^^

 

I reckon — when I count it all —(569)
     by Emily Dickinson

 

I reckon — when I count it all —
First — Poets — Then the Sun —
Then Summer — Then the Heaven of God —
And then — the List is done —

But, looking back — the First so seems
To Comprehend the Whole —
The Others look a needless Show —
So I write — Poets — All —

Their Summer — lasts a Solid Year —
They can afford a Sun
The East — would deem extravagant —
And if the Further Heaven —

Be Beautiful as they prepare
For Those who worship Them —
It is too difficult a Grace —
To justify the Dream —

 

https://en.wikisource.org/wiki/I_reckon_%E2%80%94_when_I_count_it_all_%E2%80%94

 

I reckon — when I count it all — - Wikisource, the free online library

I reckon — when I count it all — First — Poets — Then the Sun — Then Summer — Then the Heaven of God — And then — the List is done — But, looking back — the First so seems To Comprehend the Whole — The Others look a needless Show —

en.wikisource.org

 

내 생각에 내가 그걸 모두 꼽자면

     - 에밀리 디킨슨

 

내 생각에 내가 그걸 모두 꼽자면

우선 시인 그리고 태양 –,

그 다음엔 여름 그 다음엔 하느님의 천국

그리고 나면 이게 전부

 

하지만 돌아보니 첫째가 너무도

전체를 포함하는 것 같아

다른 것들은 나올 필요가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쓰지 시인들 모두들

 

그들의 여름 일년 내내 이어지고

그들은 태양을 감당할 수 있기에

동쪽은 사치라 생각되겠지만

그 후에 만일 그 보다 더한 천국이라면

 

그들이 준비했기에 아름다워야 하리

그들을 경배하는 자들을 위해 –.

너무나 어려운 일이야. 은총이

꿈을 정당화하는 것은

 

 

 

느낌은 그래도 나름행복했던 듯 싶죠? 일년 내내 여름만 살고 있다면그 이상은 해가 뜨는 동쪽이나 천국까지 희망하는 것은 사치일 테니까요. 행복했던 것 같기는 한데,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기에, 혹은 가지고 있기에, 더 필요한 것이 없다고 느끼는 만족한 상태(satisfaction)는 아닌 것 같고, 심리적인 만족감이라고 봐야겠죠. 남들이 보기에는 어떻든지 간에 나는 행복한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나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행복은 더불어 느끼는 만족감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저런 삶에 에밀리는 만족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확실히 그렇다일 것입니다만, “저런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라는 질문이라면글쎄요. 어떤 가족과 살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에밀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또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에밀리에 대한 우리의 평가 또한 달라질테구요. 아무튼 우리가 뭐라 하던간에 에밀리 스스로는 안분지족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디킨스의 시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보고 갈게요. 영시 원문을 보시면 알겠지만, 대쉬(—) 너무 많죠? 디킨슨은 대부분의 문장부호를 전통적인 용법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자의적인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전체 시가 하나로 부드럽게 이어진다기보다는 구절 구절이 툭툭 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선택한 시어 하나하나가 너무도 간결해서 투박해 보이죠. 그래서 중간중간 끼어드는 문장부호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거의 분자수준까지 쪼개진 단어를 서로 결합시켜주는 접착제 같은 느낌까지 듭니다. 분자식을 보는 같지 않으세요! ^^ 그렇기 때문에 디킨슨의 시는 맥락을 읽어내기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사실 디킨슨의 시는 분량이 짧아 한 번 잘 읽어봐야지 하고 달려들어도 굉장히 읽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번역은 훨씬 더 힘들구요.

 

그런데 이런 간결함, 투박함, 그리고 솔직함이 오히려 20세기의 독자들이 휘트먼과 더불어 디킨슨을 모더니즘의 기원이라고 보게 만든 요인이라고 합니다. 휘트먼이 초월주의의 입장에서 모든 것들을 수용하고 포용해서 통합해 나가는 방식의 자유로운 시 쓰기로 새 시대의 흐름을 이끌었다면, 디킨슨은 그와는 반대로 언어를 쪼개고, 구별하고, 분류해서, 군더더기는 다 버리고, 종국에는 가장 작은 순간을 포착한 후, 그걸 환유적으로 사용해서 다시 보편적인 의미로 확대합니다. 이런 시어의 사용은 미국이 주도한 또 다른 시 운동인 이미지즘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다 만나죠.^^) 그리고 이게 우리가 미국시의 긴 여정에서 휘트먼을 거쳐 디킨슨으로 온 이유입니다.

 

아무튼지 간에, 시어의 간결함이 분자수준까지 내려간 디킨슨을 위해 한 마디 변명을 하자면… “장황함은 팔다리요, 겉치레 tediousness the limbs and outward flourishes”일 뿐이고간결함이야 말로 지혜의 정수 Brevity is the soul of wit”라는 걸 뼛속 깊이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겠죠(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디킨슨의 쉽지 않은 시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너무나 아름답게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화가 한편 있습니다. 그래서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테렌스 데이비스(Terence Davies) 감독의 2016년작, “조용한 열정A Quiet Passion”입니다. 제목도 굉장히 시적이죠, 형용사 조용한quiet” 꾸밈을 받는 명사 열정passion” 서로 모순적이죠, “열정 조용하다니…. (이런 모순어법oxymoron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곳곳에서 소개해 주는 것은 물론, 영화에서 주고받는 대사 하나 하나가 시처럼 들리는 대단히 섬세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 생략과 비약으로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는 헐리우드식 영화에 익숙해진 분들이라면 끝까지 보기가 굉장히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는 일반적인 이야기의 구도라 있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구분이 안됩니다. 그저 에밀리 디킨슨의 삶만이 있을 뿐입니다. 템포는 굉장히 느린데, 상영시간은 2시간이 넘구요(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해 보세요). 하지만 닦는 심정으로 영화감상을 시작해서, 중반, 그리고 종반에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등장인물들의 감정 사이에서 일희일비하며 영화에 몰입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시게 겁니다. 그러면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여성시인의 시와 그녀의 삶에 대해 깊이 공감하실 있을 겁니다.  

 

 

혹시 보실 분들을 위해 당시 예고편으로 올라 영상을 링크할게요.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9&v=sDsmb_MY2b0&feature=emb_logo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74&v=0lXqx0zo7_U&feature=emb_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