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찰하는 삶

059_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혹곤이지지

728x90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 而行之 及其成功 一也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혹곤이지지 급기지지 일야 혹안이행지 혹리이행지 혹면강이행지 급기성공 일야

 

 

혹은 태어나면서 이것(다섯 가지의 도와 세 가지의 덕, 그리고 그 바탕에 성誠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혹은 배워서 이것을 알고, 혹은 애를 써서 알지만, 그 아는 데에 미쳐서는 똑같다. 혹은 편안히 이것을 행하고, 혹은 이롭게 여겨서 이것을 행하고, 혹은 억지로 힘써서 이것을 행하지만, 그 공을 이루는 데에 미쳐서는 똑같다.

                                                                                                                        (중용_20장_9절)

                                                                                      

hm.cyberseodang.or.kr/verbalTrans/classic_view.asp?idx=1454&listLevel=2&fromPage=searchOrigin

 

한문독해첩경

혹  혹 혹  어떤 사람, 혹자  2 생  나다  3 이  말 이을 이  [계속]~하여, ~해서, 그래서  5 지  알 지  알다  4 지  그것 지  그, 그것  며  며  。 혹  혹 혹  어떤 사람, 혹자  2 학

hm.cyberseodang.or.kr

 

 

이을호 선생의 번역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혹 나면서 이를 알기도 하고, 혹 배워서 이를 알기도 하고, 혹 노력하여 알기도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하나니라. 혹 가만히 앉아서 이를 행하기도 하고, 혹 순조롭게 이를 행하기도 하고, 혹 애써 이를 행하기도 하지만, 공을 이룩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하나니라. (한글중용대학, 이을호 역)

 

 

글의 구조상 나면서부터 세 종류의 사람이 세 종류의 행함과 댓구를 이룹니다. 그렇기에 아는 자는 편안히 도를 행하고, 배워서 아는 자는 이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행하고, 애써 아는 자는 억지로 힘을 써서 이것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자는 어떤 부류에 속한 분이셨을까요? 논어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자왈, “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7.술이述而_1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면서부터 그것을 아는 자는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해서 민첩하게(부지런하게) 그것을 추구한 자이다.

 

hm.cyberseodang.or.kr/verbalTrans/classic_view.asp?idx=3118&listLevel=2&fromPage=searchOrigin

 

한문독해첩경

직해 자료를 수시 업데이트하고 있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용 권한이 없습니다. 하단의 '심화학습(축자DB) 이용 범위 안내'를 참조하세요. 원문 및 의역(Original Text & Liberal Translation) ○子

hm.cyberseodang.or.kr

 

~~~ 공자님도 두 번째 부류였네요!!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孔子曰, 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공자왈, “생이지지자상야, 학이지지자차야, 곤이학지, 우기차야, 곤이불학, 민사위하의.” (16.계씨_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며, 곤란해져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고, 곤란해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백성 중에 최하이다.

 

hm.cyberseodang.or.kr/verbalTrans/classic_view.asp?idx=5286&listLevel=2&fromPage=searchOrigin

 

한문독해첩경

1 공  구멍 공  성씨(姓氏)  2 자  스승 자  스승  ㅣ  3 왈  말할 왈  말하다, 일컫다  。 1 생  태어나다  2 이  말 이을 이  [계속]~하여, ~해서, 그래서  4 지  알 지  알다  3 지  그것

hm.cyberseodang.or.kr

 

여기에서는 곤이불학이라는 한 가지 부류가 더 추가 됩니다. 공자께서는 두 번째 부류였지만, 사실 첫 번째나 네 번째는 변하지 않는 부류라 할 수 있습니다. 성인은 나면서부터 다 알기에 바뀔 일이 없고, ‘곤이불학은 어려움에 처해서 조차 배우지 못하기에 바뀔 여지가 없는 것이죠. 공자께서 한탄하셨던 제자, 재여가 이 곤불학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문일지십으로 유명한 안회는 어떨까요? 안회 역시 들어서 안다는 점에서는 학이지지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아는 자, 배워서 아는 자, 무지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며 알게 되는 자.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시나요? 학창시절 훨씬 적은 시간을 공부하고 남들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친구를 부러워 해 보신 적 없으세요? 혹시 우리 중에 생이지지 한 분 계시지 않나요? 계시면 솔직히 손 들어주세요.^^ 아마 우리 대부분은 학이지지에 해당할 겁니다. 그런데 혹시 문십지일이었던 분이 계십니까? 진짜 노력을 많이 했는데 허무할 정도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 실망하셨던 분들이 계신가요? 그래도 실망하지 마세요. ‘곤이불학은 아니잖아요. 비록 오늘의 구절은 맥락도 없이 천재와 범재 그리고 둔재를 나누는 기준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비행기로 갈 수도 있고, ‘기차로 갈 수도 있고, ‘버스자동차혹은 자전거나 심지어는 도보로 갈 수도 있지만, 결국 서울에 도착하는 것은 매 한 가지입니다. 그저 다른 경치를 감상할 뿐이고 모두가 다 소중한 순간들인 것이죠. 그러니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며 도착할 때까지 노력할 뿐이죠. ^^

 

중용장구에 있는 주희의 설명으로 나머지를 대신할까 합니다.

 

‘知之’라는 것의 아는 것과行之라는 것의 행하는 것은 達道를 말한다. 그것을 나누어 말하면 알도록 하는 것은 知이고 행하게 하는 건 仁이다. 그것을 알거나 공을 이룸에 이르러선 하나라고 하는 건 勇이다. 그걸 등급으로 말하면 生知와 安行은 知이고, 學知와 利行은 仁이며, 困知와 勉行은 勇이다. 대저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 않음이 없으나 氣稟이 같지 않기 때문에 도를 들음에 빠름과 느름이 있고 도를 행함에 어렵고 쉬운 게 있다. 그러나 스스로 힘써 멈추질 않을 수 있다면 이르게 되는 곳은 하나인 것이다. 呂大臨이 말했다. “들어가는 길은 비록 다르지만 도착하게 되는 영역은 같다. 이것이 중용이 된 까닭이다. 만약 生知와 安行의 자질을 바라면서도 거의 미칠 수 없다고 여기고 困知와 勉行을 가벼이 여겨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것이 道는 밝아지지 않고 행하여지지 않는 이유다.” (知之者之所知, 行之者之所行, 謂達道也. 以其分而言, 則所以知者知也, 所以行者仁也. 所以至於知之成功而一者, 勇也. 以其等而言, 則生知安行者知也, 學知利行者仁也, 困知勉行者勇也. 蓋人性雖無不善, 而氣稟有不同者, 故聞道有蚤莫, 行道有難易. 然能自强不息, 則其至一也. 呂氏曰: “所入之塗雖異, 而所至之域則同, 此所以爲中庸. 若乃企生知ㆍ安行之資爲不可幾及, 輕困知ㆍ勉行謂不能有成, 此道之所以不明不行也)

 

hm.cyberseodang.or.kr/verbaltrans/classic_view.asp?idx=9086&listLevel=3

 

한문독해첩경

직해 자료를 수시 업데이트하고 있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용 권한이 없습니다. 하단의 '심화학습(축자DB) 이용 범위 안내'를 참조하세요. 원문 및 의역(Original Text & Liberal Translation) 【集

hm.cyberseodan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