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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삶

018_The Pulley by George Herbert(1593-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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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입니다. 모두가 쉬고 싶은(!), 혹은 쉬어야만 하는(?) 휴일이죠. 이런 의미에서 오늘은 참된 휴식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시를 한 편 가져왔습니다.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1593-1633)The Pulley(도르레)입니다. 도르레가 도대체 휴식과 무슨 상관이 이 시인이 보여주는 본질에 대한 탁월한 직관과 시적 통찰력을 한번 잘 음미해 보세요.

 

이 마지막 문장은 쓰고 보니 어렵네요. 쓴 저도 사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요. ^^ 그냥 철학적인 것 같아 그럴 듯 하게 보여서 썼다고 생각해 주시고, 뜻은 그럼 한 번 보시죠 정도로 이해해 주세요.

 

The Pulley

     by George Herbert

 

When God at first made man,

Having a glass of blessings standing by,

Let us, said He, pour on him all we can.

Let the worlds riches, which dispersed lie,

Contract into a span.

 

So strength first made a way,

Then beauty flowed, then wisdom, honour, pleasure

When almost all was out, God made a stay,

Perceiving that alone of all His treasure

Rest in the bottom lay.

 

For if I should, said He,

Bestow this jewel also on my creature,

He would adore my gifts instead of me,

And rest in nature, not the God of nature;

So both should losers be.

 

Yet let him keep the rest,

But keep them with repining restlessness,

Let him be rich and weary, that at least,

If goodness lead him not, yet weariness

May toss him to my breast.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4370/the-pulley

 

 

신의 축복

     - 조지 허버트

 

바로 옆에 축복의 상자 놓으시고
신이 처음 인간을 만드시며 말씀하시기를,
우리 가진 모든 거 그에게 부어주세
흩어져 널려있는 세상의 모든 축복
그에게 부어주세

그리하여 맨처음 힘이 나오고
아름다움이, 지혜가, 명예가, 기쁨이 뒤따라 흘렀네.
거의 다 흘러나와 그가 가진 보배 중
안식만이 홀로 이 밑바닥에 놓였음을 아시자
신은 멈추셨다.

내가 만든 인간에게 신의 말씀.
이 보배마저 주어버린다면
인간들은 나대신 내가 준 선물을 경모하고
자연계의 만물에게 만족하여
그 결과 우리는 서로 손해보게 되리니.

그에게 안식외의 나머지 보배 갖게 하고
그나마 초조한 불안 속에 갖게 하자.
부귀하나 번민하여, 적어도
착한 마음이 그를 인도하지 못할 때
번민이래도 그를 내 품속으로 던져올리도록

(
박희진 역)

http://cafe.daum.net/vip100/3WUI/132?q=%EC%8B%A0%EC%9D%98%20%EC%84%A0%EB%AC%BC%20pulley 번역 참고

 

조지 허버트는 시인이며 사제였습니다. 그의 시 주제는 대단히 종교적이었죠. 오늘 시 역시 마찬가지구요.

 

번역하신 분은 제목을 신의 축복이라고 하셨네요. 일과 쉼의 관계에 대해 도드레 가지고 있는 시적인 은유와 시각적인 심상이 사라져 몹시 아쉽지만, 나름 내용을 잘 살린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살짝 바꿔 번역을 해 보면

 

도르레

 

하느님이 처음 인간을 만드실 때,
바로 옆에 축복의 잔을 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부어주자
세상에 흩어져 널려 있는 모든 풍요로움을
한 뼘에 축소시켜 부어주자."

 

그래서 맨 처음 힘이 길을 내고,
그리고 아름다움이 흘러나오고, 그리고 지혜, 명예, 기쁨이.
거의 다 나왔을 때, 하느님은 멈추셨다,
그의 모든 보물 중 휴식만이 홀로
바닥에 있음을 아셨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보석마저
내가 만든 피조물에게 주어버리면,
그는 나 대신 내 선물을 숭배하며,
자연의 주인인 하느님이 아니라 자연에서 쉴 것이다.
그러면 둘 다 패배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나머지를 갖게 하는 대신에
쉼 없이 불평하며 갖게 하자.
그로 하여금 부요하나 지치게 하여, 마침내
선이 그를 이끌어 주지 못하더라도, 피로가
그를 내 품으로 던져주도록"

 

이 정도가 직역일 듯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유대교, 그리스도교는 일주일에 하루를 정해 쉽니다. 이것이 소위 안식일이죠. 흥미로운 것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입니다.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만,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금요일 해질녘부터 토요일 해질녘까지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계산하는 방식이 조금 낯설죠.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규정을 하고 안식일을 맞이하는 데는 신의 명령으로 거룩하게 구별해서 지켜야 하는 날을 잠을 자다가 깨어나 급하게 맞이할 수는 없다는 종교적 결단과 그에 대한 헌신적인 실천이 담겨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그들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경건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문제는 쉬다 일하지 않다, 다시 수 없이 많은 이런 일은 해도 괜찮고, 이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 세분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 하루를 쉬면서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지고, 쉬면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아져 오히려 쉼 그 자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할 수 있는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의무만 남고 만 것입니다. 자연스레 해야 할 일들을 이 하루 동안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쉬는 게 아니라 대단히 심력을 소모하는 노동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 결국 요약하자면, 쉬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노동을 하고 있다는

 

때로는 잘 쉬려는 열정이, 잘 쉬어야 한다는 부담이 우리의 휴식을 방해합니다. 아무쪼록 오늘은 모두들 신의 축복을 만끽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