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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삶

020_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by W. B. Yeats(1865-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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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일상 생활에서 우리 모두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는 이 구절을 담은 김소월의 진달래꽃 언급할 때마다 함께 거론되는 영시가 한편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며 극작가로서,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이라는 시입니다. 예이츠의 세 번째 시집인  The Wind Among the Reeds(1899)에 실려 있는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by W. B. Yeats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https://poets.org/poem/aedh-wishes-cloths-heaven

 

Aedh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by W. B. Yeats - Poems | poets.org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 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poets.org

https://www.youtube.com/watch?v=PD_E2eLDKSE

 

이 시의 번역본은 워낙 많습니다. 1918년 안서 김억((1893~195?)이 번역문예주간지인 태서문예신보 11(1918.12.14)이라는 제목으로 한글로 번역하여 소개 한 이래 2006년까지 17번째 한글 번역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이 시의 번역을 주제로 예이츠 시 번() 100: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을 중심으로(김용권)라는 논문이 2013년 한국 예이츠 저널에 발표되기도 했구요. 이 논문에 의하면 초기 역본은 일본어 중역이고, 점점 나아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오역이 있다고 하네요. 흥미로운 건 이전 번역이 이후 역자에게 영향을 끼치며 오역이 담고 있는 감정과 인상을 그대로 차용한 번역도 계속 나타난다는 점인데요, 오늘 제가 선택한 번역은 가장 최근인 2006년 장영희 선생의 것입니다.

 

그는 하늘의 천을 소망한다

     - 예이츠 

 

내게 금빛은빛으로 수놓은

하늘의 천이 있다면

밤과 낮과 어스름으로 물들인

파랗고 희뿌옇고 검은 천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 밑에 깔아드리련만

허나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 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장영희 역, 생일에서(비채, 2006)

 

소월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할께요. 소월(1902~1934) 15세에 정주의 오산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 이 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을 가르치던 안서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그 이후 많은 작업을 함께 하구요. 소월이 쓴 시의 초고 가운데 상당량이 오산학교 기숙사에서 쓰여졌었다는 것은 소월에 대한 안서의 영향력을 짐작케 할 수 있는 대목이죠.

 

소월(1902~1934)은 개벽 25(1922.7)에 최초로 발표했던 진달래 꽃을 23세가 되던 1925진달래꽃이라는 시집을 통해 약간의 표현을 수정해서 출판합니다. 예이츠와 안서, 그리고 소월, 세 사람의 관계와 시를 발표한 시간적인 차이로 인해 소월이 예이츠의 시에서 진달래꽃의 시상을 얻었고, 안서의 번역에 나온 표현을 차용했을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학자들 사이에 있어 왔습니다만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죠. ^^.

 

실제로 안서가 소월 사망 다음 해인 1935년 소월을 기억하며 쓴 요절한 박행시인 김소월의 추억이라는 글에서, 진달래꽃 대해 이렇게 떠올립니다. [예전에는 밋처 몰랏서요]는 소월이의 열팔구세 전후의 작으로 이 시에 대하여 토론도 하였을 뿐 아니라, 그때에는 하루같이 만나서 동서시인들의 시가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는 것으로써 일과를 삼다시펐다고 하네요. 그러니 예이츠와 안서, 그리고 소월의 영향관계에 대해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예이츠의 작품이 예이츠의 삶의 지평 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진달래꽃은 예이츠로부터 받은 영감이 안서와의 관계 속에서 확장된 소월의 지평으로 들어와 새롭게 창조된 작품이고, 그래서 사뿐히 즈려밟다 구절이 안서로부터의 차용 혹은 표절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별처럼 영롱하게 반짝이는 그의 여러 작품 가운데 하나인지라, 오늘같이 소월의 시를 읽을 때면, 이 천재시인의 요절이 그저 안타까워질 뿐입니다.

 

그래서 소월의 시 가운데 제가 너무 좋아하는, 모두가 다 알고 계실 시를 한 편 소개해 드리고 오늘 글을 마칠까 합니다.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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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을 보니 인적이 드문 거리가 왠지 허전하고 아쉽고 사람이 그립기만 한 그런 날입니다.

삶의 이력 속에 남겨진 하얀 여백으로 스며 들어가 나만 아는 추억에 푹 잠기는 그런 하루가 되면 좋겠네요. 바쁘지만 않다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