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요일. 짧은 동시를 한 편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셸 실버스타인의 “이게 아니야”입니다.
이게 아니야
- 셸 실버스타인
내가 해 달라고 한 건 이게 아니야
자, 내 몸을 목까지 모래 속에
묻어 줘.”
라고 말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니라고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김기택 옮김. 서울: 살림, 2012.
이걸 좀 더 거칠게 직역하면,
잘못된 방식
- 셸 실버스타인
내가 요구한 게 이건 아니지,
내가 의도했던 게 이건 아니라고.
내가 “자,
나를 묻어봐
모래 속에 목까지 오도록”이라고 말했을 때는.
애매모호하다라는 말을 합니다. 참 자주 쓰는 말입니다만 애매와 모호는 확실히 구별되는 표현입니다. 애매함과 모호함은 주로 논리학의 비형식적 오류를 다룰 때 언급되는 잘못된 언어사용의 예가 됩니다. 하지만 시에서는 의미를 풍요롭게 해주는 언어적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구별하자면 애매하다는 것은 두 개의 선택지 중에서 이것인지 저것인지 헷갈린다는 의미입니다. “애매한”은 영어로 “ambiguous”인데 이때 “ambi-”는 “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준이 없어 뜻이 분명하지 않으면 모호한 것이죠. “모호한”은 영어로 “vague”인데, 이건 라틴어 “vagus”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는 “정처없이 떠도는,” “방랑하는”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머물 곳이 없다라는 원래의 의미로부터 기준이 없어 판단하기 힘들다라는 의미가 된 것이죠.
혹시 셸 실버스타인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저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게 아니야”는 이 분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지만 발표하지 않았던 작품들을 모아 출판한 “Every Thing On It”(세상의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라는 책에 나오는 동시 가운데 한 편입니다.
실린 작품 한편 한편이 너무나 유쾌한 이 책에서 셸 실버스타인은 순수한 마음, 천진난만한 생각, 애매모호한 일상언어를 사용하여 기발한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끕니다. 이 시가 모두에게 유쾌한 일요일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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