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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하는 삶

197_山中 산중(이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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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中 산중(이율곡)

 

採藥忽迷路 (채약홀미로) 약초 캐다 홀연히 길을 잃었는데

千峰秋葉裏 (천봉추엽리) 일천 봉우리가 가을 낙엽 속에 있네.

山僧汲水歸 (산승급수귀) 산중 스님이 물 길어 돌아가더니

林末茶烟起 (임말다연기)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 피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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採 채(캐다, 채취하다)

藥 약()

忽 홀(갑자기, 문득)

迷 미(미혹하다, 길을 잃다)

峰 봉(봉우리)

葉 엽(입사귀)

裏 리(, 내부, 가운데; 안쪽)

僧 승(스님, )

汲 급(긷다, 푸다)

歸 귀(돌아가다)

茶 다()

烟 연(연기; 연기가 끼다)

起 기(일어나다;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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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선생의 한시 이야기의 두 번째 꼭지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입니다. 정민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옛날 중국의 송나라에 휘종 황제란 분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너무 사랑했다. 그림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훌륭한 화가였다. 휘종 황제는 자주 궁중의 화가들을 모아 놓고 그림 대회를 열었다. 그때마다 황제는 직접 그림의 제목을 정했다. 그 제목은 보통 유명한 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었다… (중략) …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

 

절을 그려야 하지만 감춰져 있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그려야 할까? 한참을 끙끙대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대부분 산을 그려 놓고, 그 숲속 나무 사이로 절 집의 지붕이 희미하게 비치거나, 숲 위로 절의 탑이 삐죽 솟아 있는 풍경이었다. 황제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때 한 화가가 그림을 제출했다... 우선 화면 어디에도 절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깊은 산 속 작은 오솔길에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서 올라가는 모습을 그려 놓았을 뿐이었다

 

이 화가에게 1등상을 주겠다.”

 

! 이 그림을 보아라. 내가 그리라고 한 것은 산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절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라고 했는데, 다른 화가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절의 지붕이나 탑을 그렸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절을 그리는 대신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을 그렸구나. 스님이 물을 길으러 나온 것을 보니, 근처에 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이 너무 깊어서 절이 보이지 않는 게로구나. 그가 비록 절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만 보고도 가까운 곳에 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풀어 놓은 후에, 오늘의 시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이의 시를 그림으로 그리면 어떻게 될까를 묻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이렇게 답합니다.

 

낙엽 쌓인 산속에 망태기를 든 약초꾼 한 사람이 먼 곳을 보며 서 있겠지. 스님의 모습은 그리면 안 된다. 다만 숲 저편으로 실오리 같은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 위로 피어오르면 된다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뛰어난 화가는 그리지 않고서도 다 그린다. 훌륭한 시인은 말하지 않으면서 다 말한다. 좋은 독자는 화가가 감춰 둔 그림과 시인이 숨겨 둔 보물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찾아낸다. 그러자면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정민선생님이 들여주는 한시 이야기, 26~32쪽에서)

 

확실히 처음 읽을 때와는 달리 시에 직접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 꽤 많아졌다는 것을 느끼시죠?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는 너무 유명해서 설명이 전혀 필요 없는 분이죠! 명종 3 13세의 나이로 처음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해 장원을 한 후, 명종 19년인 1564년 실시된 대과(大科) 에서는 문과(文科)의 세 가지 시험인 초시(初試), 복시(覆試), 전시(殿試)에 응시해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여 삼장장원(三場壯元)으로 불렸고, 총 아홉 차례 응시한 과거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여 사람들에게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리기도 했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35304&cid=40942&categoryId=33383

 

이이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동호문답>, <성학집요> 등의 저술을 남겼다. 현실ㆍ원리의 조화와 실공(實功)ㆍ실효를 강조하는 철학사상을 제시했으며, <동호문답>ㆍ<만언봉사>ㆍ<시무육조>

terms.naver.com

 

이 중에서도 명종 13년인 1558년 율곡 이이가 별시(別試)에서 장원하였을 때의 답안을 천도책이라고 하는데, 당시 시험관이었던 정사룡(鄭士龍)과 양응정(梁應鼎) 같은 이들은 2,500여 자에 달하는 이이의 천도책을 보고우리들은 여러 날 애써서 생각하던 끝에 비로소 이문제를 구상해냈는데, 이모(李某)는 짧은 시간에 쓴 대책(對策)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천재이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천도책은 당시의 학계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후일 명나라에까지 알려졌습니다. 선조 12년인 1582년 겨울, 중국의 조사(詔使)로 온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 황홍헌(黃洪憲)이 원접사로 나온 이이를 보고 역관(譯官)에게저 사람이 「천도책」을 지은 분인가?라고 물었다고도 할 정도로 이이의 명성은 이미 그 당시 중국의 학계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5828 )에서

 

천도책(天道策)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먼저 “상천(上天)의 일은 무성무취(無聲無臭)하여 그 이(理)는 지극히 은미하고 그 상(象)은 지극히 현저하니, 이 설(說)을 아는 사람이라야 더불어 천도(天道)를 논할 수 있다. 이제 집사(執事)

encykorea.aks.ac.kr

 

천도책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당시 별시의 질문과 이이의 답변을 링크해 놓습니다.

질문: http://www.yulgok.co.kr/book/chndo1.htm

 

천도책(天道策) 문

천도책(天道策) 이 글은 율곡이 23세(명종 13년) 때 겨울에 있었던 별시(別試)에서 장원 급제한 글로써, 천도책(天道策)이란 천문, 기상의 순행과 이변 등에 대한 책론이며 여기서 책(策)이란 과거

www.yulgok.co.kr

답변: http://www.yulgok.co.kr/book/chndo2.htm

 

천도책(天道策) 답

천도책(天道策)  대(對) 상천(上天)의 일은 무성무취(無聲無臭)1)하여 그 이(理)는 지극히 은미하나 상(象)은 지극히 현저하니 이 설(說)을 아는 사람이라야 더불어 천도를 논할 수 있습니다. 이제

www.yulgok.co.kr

 

약초캐러 왔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은 약초꾼을 노래한 산중이라는 시. 한참 한자를 쓰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지는 않으신가요? 약초꾼처럼 편한 마음으로 한자의 숲으로 들어왔는데 길을 잃어버린 분은 없으세요. 덜컹 겁도 나시죠! 이게 언제 끝날까…. 바빠서 시간은 점점 부족한데날은 어두워지고사나운 산짐승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잘못 발을 내디뎠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어떻하지?

 

잠시 마음을 추스리고 조용히 주변을 살펴보세요. 그러면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하루의 마무리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