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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하는 삶

200_還閉汝眼 卽便爾家 환폐여안 즉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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還閉汝眼 卽便爾家

환폐여안 즉편이가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야.

                                                      (연암집_답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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還 환(돌아오다; 돌아보다)

閉 폐(닫다; 막다; 가리다)

汝 여()

便 편(편하다)

爾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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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시와 100일한자의 마지막 포스팅이네요. (작년 카톡에 올린 그대로 올립니다.)

 

100일간 그간 소원(疏遠인가요 아니면 所願인가요!)하던 한자를 쓰시느라 정말 노력하셨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오늘 마지막 구절은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의 마지막 장의 내용으로 함께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장에는 대신에 연암 박지원의 산문이 실려있네요. 이하는 직접인용입니다. (원문은 정민선생도 자신의 책에서 인용하지 않았으니 저도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내용이 아주 길고 어려운 한자도 꽤 되거든요. 혹시 그래도 원문을 읽고 싶으신 분들은 한국고전종합DB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니 아래 사이트를 방문해 보세요.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68A_0050_010_0090 )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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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하도 빨리 변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새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옛날 일을 까맣게 잊고 말았구나. 잊어버려야 할 것은 빨리 잊는 것이 좋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까지 다 잊어버리고 마니, 이것은 참 슬픈 일이다. 지식과 정보는 새로운 것이 좋을 수 있지만, 삶의 지혜는 그렇지가 않단다. 지혜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오래된 것 속에 반짝이는 보석 같은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는 법이지.

 

우리가 지나간 옛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반짝이는 보석을 간직하기 위해서란다. 컴퓨터를 잘하고 게임을 잘하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좋지만, 마음 속에 지혜의 샘물이 흘러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단다

 

박지원이 쓴 <창애에게 보내는 답장>이란 글에는 눈을 뜬 장님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옛날에 화담 서경덕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답니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지난 20년 동안 장님으로 살아 왔습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와서 길을 걷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천지 만물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기뻐서 집에 돌아가려고 하니까, 골목길은 여기저기 많기도 하고, 대문도 모두 같아 보여서 제가 살던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집으로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還閉汝眼 환폐여안).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야(卽便爾家 즉편이가).’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더듬거려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는 거지요.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보이지 않던 천지 만물의 형상과 빛깔이 눈앞에 나타나자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뒤죽박죽이 되어 헛된 생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지팡이를 두드리고 자기 발걸음을 믿는 것(扣相信步 구상신보, 扣 두드릴 구).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얘길까? 장님은 지금까지 눈을 감고도 불편한 줄 모르고 잘 살아왔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을 뜨게 되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구나. 눈을 감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살 때는 골목길이 아무리 복잡하게 얽혀 있어도 상관이 없었고, 대문의 모습을 보지 못해도 제 집을 찾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그런데 눈을 뜨자 서로 비슷비슷한 골목길과 대문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집을 찾지 못하게 되고 말았지.

 

이 때 서경덕 선생은 장님에게 다시 눈을 감으라고 말을 하고 있구나. 말하자면 옛날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지. 지금의 장님의 가장 큰 문제는 눈은 떴지만 제 집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제 집에서 눈을 뜬 채로 걸어 나왔다면 다시 찾아 들어가는 것도 어려울 것이 없었겠지. 그러니 잠시 눈을 감아서 제 집으로 돌아간 뒤에 다시 눈을 뜨고 나온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 아니겠니?

 

장님이 눈을 떴다면 정상인이 된 것인데, 그는 정상인이 되자마자 자기 집도 못 찾는 바보가 되고 말았구나. 이 눈뜬 장님이 누군고 하면 바로 우리들이란다. 오늘날 과학문명은 지구촌 한 가족이란 말을 실감하게 할 정도로 빠르게 세계를 하나의 울타리로 묶어주고 있다. 그렇지만 매일 쏟아져 나오는 그 많은 정보들도 내가 판단하고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내 집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내 집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면 골목길이 아무리 복잡하고 대문이 아무리 비슷해도 아무 염려할 것이 없어지지길에서 울고 있을 필요가 없게 돼.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17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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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를 탈출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까지 광야에서 하루 하루를 때우며 무려 40년을 삽니다. 금방 실현될 줄 알았던 풍요로운 땅에서의 평화로운 정착이라고 하는 장미 빛 약속은 하루 이틀, 한해 두해가 지나며 점점 멀어져 가는 듯 했습니다. 집 없이 황량한 광야에서 살아가는 40. 듣기만 해도 진이 빠지죠. 광야라는 표현이 구약에서 약 230회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기는 합니다만 신약에서도 약 50회 이상 사용됩니다. 세례자 요한이 등장한 것도 광야였고, 예수가 홀로 금식을 한 곳도 광야였으니까요.

 

신약성서가 쓰인 언어는 그리스어인데 그리스어로 광야는 에레모스(ρημος ←요건 그리스어입니다)라고 합니다. ‘버려진 곳,’ ‘황폐한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성서의 언어인 히브리어로는 (물론 광야에 해당하는 다른 단어도 있기는 합니다만) ‘미드바르(midbar, רבדמ요건 히브리어인데 특이하게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고, 모음은 없고 대신 모음기호만 있습니다. 그러니 알파벳에 따라 표기하자면 르바드미 되는거죠!)라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말씀을 듣는 곳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מ는 분사접두어이고 드바르רבד다바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형태인데 이건 말씀, 사건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거든요. , 이스라엘 사람들과 예수에게 황폐하고 모두에게 버려진듯한 광야는 신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곳이었고, 그렇게 해서 절망과 역경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과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원천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일년 내내 코로나로 갑자기 불투명해져 버린 미래를 헤아리고 설계하려 골머리를 앓던 제게, 집에 콕 박혀서 지난 100일간 한문을 읽고 썼던 시간이 눈을 감고 그 동안 살던 집으로 되짚어 돌아가보는 그런 뜻 깊은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 한해 하루하루가 마치 광야에 있는 것처럼 한편으로는 외롭고 다른 한편으로는 막막했지만, 머리와 가슴만큼은 선현들의 지혜의 말씀으로 꽉 차게 된 것 같아요. 이런 의미에서 겉보기에는 에레모스와도 같았던 올 한 해가 실제로는 미드바르의 시간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100일 한문을 시작하기 전보다 여러모로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사실 작년 하반기에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했는데 코로나로 일이 꼬이며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치관도 약간 혼란해 졌었던 것 같구요. .ㅜ 그런데 이 100일 한문이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지팡이를 두드리고 자기 발걸음을 믿는 것.” 그 동안 제가 붙들고 살아오던 가치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반성해 보는 기회가 되었고, 어느 때보다도 더 변화무쌍해질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 아무튼 매우 유익하고 즐거웠다는 이야기지요. ^^

 

제가 원래 무척 게을러서 혼자라면 절대로 이런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했을 리가 없었을텐데지난 번 100일 시도 그렇고, 이번 100일 한문도 그렇고덕분에 끝까지 완주하고 힘을 얻어갑니다. 같이 출발해 주신 분들, 중간에 함께 달려주신 분들, 끝까지 완주해 주신 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원문입니다.

燕巖集卷之五_映帶亭_尺牘_答蒼厓[之二]

還他本分 豈惟文章。一切種種萬事摠然。花潭出。遇失家而泣於塗者曰。爾奚泣。

對曰。我五歲而瞽。今二十年矣。朝日出往。忽見天地萬物淸明。喜而欲歸。阡陌多歧。門戶相同。不辨我家。是以泣耳。先生曰。我誨若歸。還閉汝眼。卽便爾家。於是。閉眼扣相。信步卽到。此無他。色相顚倒。悲喜爲用。是爲妄想。扣相信步。乃爲吾輩守分之詮諦。歸家之證印。

환타본분 기유문장. 일절종종만사총연. 화담출, 우실가이읍어도자왈: “이해읍?” 대왈: “아오세이고, 금이십년의. 조일출왕, 홀견천지만물청명, 희이욕귀, 천맥다기, 문호상동, 불변아가. 시이읍이.” 선생왈: “아회약귀. 환폐여안. 즉편이가.” 어시폐안, 구상신보, 즉도. 차무타. 색상전도, 비희위용, 시위망상. 구상신보, 내위오배수분지전체, 귀가지증인.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68A_0050_010_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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