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동시 때문에 어제 하루 고생들 하셨습니다. AI가 이런 종류의 언어유희 시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는 한, 인간의 존재이유가 사라지지는 않을겁니다! ^^
지금의 서양세계를 더 잘 알기 위해서는, 그들 문화의 DNA라 할 수 있는 헤브라이즘(Hebraism, 유대기독교 전통)과 헬레니즘(Hellenism, 그리스로마 전통)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간의 상호작용, 즉 수용, 변용, 발전, 전파가 서양문화사 그 자체라 해도 아마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영어에도 큰 영향을 끼쳤겠죠.
현대 영어가 형성되는 데 가장 중요했던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두가 짐작하시듯이 셰익스피어의 등장이구요, 다른 하나는 인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의 번역과 보급입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약어로 KJV(King James Version), 혹은 AV(Authorized Version, 당시 지금의 성공회인 당시 영국국가교회의 전례용으로 제임스 1세 왕에 의해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라고 약어로 표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AV라는 표현을 번역해 흠정역(欽定譯)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 번역된 그 많고 많은 외국작품을 통틀어서, 나아가 영어로 된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 보편적인 영향력이라는 점에서 흠정역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구요? 흠정역은 그 자체가 영어의 표준이 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큰 영향을 행사한 흠정역에 있는 널리 알려진 구절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 are they that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Blessed are they which do hunger and thirst afte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obtain mercy.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the children of God.
Blessed are they which are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ke: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From Matthew 5:3~10 in the New Testament
https://www.kingjamesbibleonline.org/Matthew-Chapter-5/
MATTHEW CHAPTER 5 KJV
2000 characters remain...
www.kingjamesbibleonline.org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3절~10절)
성서 한글번역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개역개정판에서 가져왔습니다.
대한성서공회
www.bskorea.or.kr
그 어마어마한 영향력으로 인해 흠정역에 대해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데요, 그 중 하나가 흠정역이 많은 새로운 표현을 영어로 가져왔고, 영미인들의 일상에서 사용되는 상당수의 표현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셰익스피어(1565-1616)의 등장이 중세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영어에 자신의 작품에 새로운 단어, 창조적 표현, 다른 사용방식을 제시함으로써 발전의 방향성을 제대로 제시했다면, 흠정역(1611)은 많은 학자들의 고된 번역작업의 열매를 일반대중에게 보급함으로써 영어를 보편화시킨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어휘가 약 31,000개 수준이고, 흠정역에 사용된 어휘수가 12,000개 정도라면 확실한 비교가 되죠.
사실, 흠정역의 가장 중요한 번역 목표가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성경이었고, 따라서 새로운 표현을 고안해 내기 보다는 위클리프(John Wycliffe, 대략 1320년경~1384)와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 같은 분의 이전 성경 번역본을 참고하고 차용한 것이 많았습니다.
실제 데이비드 크리스털(David Crystal)이라는 분은 자신의 연구에서 흠정역에서 비롯된 고유한 영어표현은 겨우 18개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www.youtube.com/watch?v=lgSDd6Bkatg
그렇기 때문에 흠정역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수준 높은 영어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당시 영어권 대중들에게 왕이나 사제만이 아니라 모두가 읽을 수 있는 단일한 성서의 등장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지게 됩니다. 글을 아는 가정의 모두가 어린 시절부터 이 성경을 듣고 읽으며 자라게 되었거든요.
간단히 말해서 영어의 사용스타일과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일반인들의 영어수준을 몇 단계 격상시켜 표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지금도 표준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고, 단어의 용법도 달라진 것이 많아서 지금 읽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표현조차도 나옵니다.)
아무튼 이런 영향력으로 인해 영미권에서는 인식을 하든 못하든, 이 흠정역에 있는 표현을 차용하는 기사제목이나 상호, 심지어는 유머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일종의 암시(allusion)이니 읽고 익숙해 져야 파악하기 수월하죠. 이러니 단순히 단어와 문법을 안다고 외국어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고, 하면 할수록 더 힘들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재미있는 유머를 하나 짧게(?) 소개해 드릴께요.
어느 날 동물원 사육사가 동물원에서 탈출한 오랑우탄이 도서관에서 두 권의 책을 읽는 것을 봅니다. 한 권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었고, 다른 한 권은 성서였습니다. 너무 놀라서, 사육사는 오랑우탄에게 묻습니다.
“너는 왜 이 두 권의 책을 모두 읽고 있는 거니?”
그러자 오랑우탄이 대답합니다.
“Well,” said the orangutan. “I just wanted to know if I was my brother’s keeper or my keeper’s brother.”(글쎄! “나는 그저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인지, 아니면 사육사의 형제인지가 궁금했어.)
하나도 안 웃기죠. 맞아요, 안 웃겨요, 하나도. 반면에 이 이야기를 들은 상당수의 영미권 교양인들은 큰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여기에 숨겨진 암시관계를 바로 찾아내거든요. “my brother’s keeper”라는 표현은 흠정역(King James Version) 영어성서를 통해 널리 보급된 표현인데, 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아들들인 카인과 아벨의 제사 이야기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나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때 카인이 한 유명한 대답이 바로 “Am I my brother’s keeper?”입니다. “내 동생이 여기서 나와 무슨 상관 있나요?” 라고 되묻는 거죠. 먼저 이 부분을 알아야 하구요.
두 번째로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원숭이로부터 진화된 것이라는 것이 하죠. 그래서, 두 번째 부분의 Keeper’s brother인지? 라는 질문은 다윈이 맞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육사 너와 형제지간 인지 궁금해서!” 라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이 유머를 아주 밋밋하게 요약하면, “응, 성서가 맞는지 다윈이 맞는지 확인하려고”라고 대답하고 있는거죠.
여전히 별로 웃기지 않죠. 여전히 거리감이 있어요. 기껏해야 저처럼 “훗, 난 저걸 듣고 왜 영미인들이 웃는지 설명할 수 있어. 근데 사실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인데…” 정도겠죠.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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