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요일. 모두의 안묻적인(안 묻고 이해한) 동의에 의해 짧고 재미있는 시를 읽는 날이죠. 그래서 口窟神께 물어봤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짧은 영시는 무엇일까요?” 그랬더니 여러 답변을 주셨는데, 여러 모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이 이 시입니다.
Fleas
by Strickland Gillilan
Adam
Had 'em.
벼룩이
- 스트릭랜드 길리언
아담이
그걸 가지고 있었네.
(Had’em = Had them을 줄여 쓴 표현입니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표현의 간결함과 소리의 반복에 있습니다. 이렇게 들리거든요.
“애덤 / 해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이 시의 원래 제목은 “벼룩이Fleas”가 아니라 훨씬 더 장황하고 멋스러운 “미생물의 유구함에 대한 단시(短詩) Lines On the Antiquity of Microbes”였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이게 무슨 말인지 조금 더 이해가 갑니다. 에덴동산에 살았던 최초의 인간 아담이 미생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네요. 아하! 인류와 공존해 온 미생물이 있었으니, 바야흐로 그것이 벼룩이란 말이군요! 벼룩이가 그렇게 오래된 생명체라는… 응? 그런데 뭔가 좀…
맞아요. 뭔가 이상하죠? 원래 시에는 “벼룩이”라는 단어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원제목으로 읽었을 때의 저자의 의도에 말려드는 재미와 “벼룩이”로 읽었을 때의 재미가 다릅니다.
먼저 원제목으로 읽는다면, 대단히 전문적인 인상을 주는 제목으로 뭔가 미생물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밝혀냈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 다음, 단 두 단어로 된 유래 없이 짧고 쉬운 본문을 일게 되죠. 이렇게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제목과 본문이 절묘하게 어울려 마치 허무개그를 볼 때 우리가 웃게 되는 것과 같은 웃음을 준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누군가가 내용을 “벼룩이 Fleas”로 이해해서 제목을 슬쩍 바꿨고, 우리는 이제 그 제목으로 이 시를 기억하고 암송합니다. 그러니 앞에 말씀드린 재미를 느낄 수는 없죠. 하지만 어떠세요? 제목만 놓고 본다면 이게 훨씬 강렬해서 머리 속에 확 꽂히고, 읽고 나면 “아담도 벼룩이가 있었다고!” 라고 하며 읽는 사람마다 혼자 킥킥거리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지 않으신가요?
결론적으로, 너무도 간결한 표현으로 아담의 삶을 연상하고 간접적으로 체험시켜주는 언어의 시적 기능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벼룩이 얼마나 오래된 미생물인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까지 전달해주는 일거양득, 일타쌍피의 놀라운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THe Banana Splits의 "Adam Had'em"이라는 노래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XxiVAX4af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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