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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삶

097_A Pact by Ezra P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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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턴 휴즈는 자신에게 근원적인 영향을 끼친 시인을 세 명 언급합니다. 그 가운데 두 명, 폴 로렌스 둔바르(Paul Lawrence Dunbar)와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는 이미 봤고, 마지막이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입니다. 사실 월트 위트먼 이후로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미국 예술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휘트먼은 시는 물론, 미술과 음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쳤거든요. 샌드버그의 자유시와 그가 즐겨 노래했던 시의 주제 역시 휘트먼의 영향이 컸습니다.

 

스스로가 미국이 되어 버린 시인, 월트 휘트먼! 아무튼 먼 길을 돌아 돌아 바야흐로 (드디어, 기어이, 마침내, 어느덧, 이제야 겨우, 아니면 벌써?) 휘트먼에게까지 왔네요.

 

휘트먼은 자신의 시가 사진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림처럼, 사진처럼 읽는 시를 늘 염두에 두었죠. 일상을 포착해서 사진 같은 이미지로 시를 표현한

 

! 우리가 읽었던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막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으세요? 순간의 포착, 이미지의 극대화, 단순한 언어, 맞아요. 에즈라 파운드입니다.

 

월트 휘트먼의 시를 소개하기에 앞서 에즈라 파운드가 휘트먼을 소재로 쓴 시가 있어서 그 시를먼저 읽을게요. 두 시인 사이에 스타일에 있어서의 공통점은 눈을 씻고 봐도 없지만 이 시에는 휘트먼에 대한 파운드의 애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 번 느껴보세요.

 

A Pact

     Ezra Pound(1885~1972)

 

I make truce with you, Walt Whitman—

I have detested you long enough.

I come to you as a grown child

Who has had a pig-headed father;

I am old enough now to make friends.

It was you that broke the new wood,

Now is a time for carving.

We have one sap and one root—

Let there be commerce between us.

https://poets.org/poem/pact-1

 

A Pact by Ezra Pound - Poems | Academy of American Poets

I make truce with you, Walt Whitman— I have detested you long enough. I come to you as a grown child Who has had a pig-headed father; I am old enough now to make friends. It was you that broke the new wood, Now is a time for carving. We have one sap and

poets.org

 

협정

     에즈라 파운드

 

월트 휘트먼, 난 이제 당신과 그만 싸우려 하오-

난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미워했다오.

나 이제 다 자란 아이로 그대에게 왔소,

고집불통의 아버지를 두었던 내가;

나도 이제 친구를 사귀기에 충분한 나이라오.

새 나무를 마련한 건 당신이오,

그러니 이젠 조각을 해야 할 때가 왔소.

우리는 같은 피와 같은 뿌리를 가졌으니

이제 우리 사이에 거래를 틉시다.

 

 

파운드가 이 시에서 휘트먼을 오랫동안 싫어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둘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휘트먼은 1819년생이고 파운드는 1885년 생이니 휘트먼이 할아버지뻘이었고, 휘트먼이 죽던 1892년 파운드는 겨우 일곱 살이었으니까요. 그러니 휘트먼에 대한 파운드의 부정적인 감정은 아마 에즈라 파운드의 시에 대한 전통적인 태도와 그런 관념을 여지없이 깨드린 휘트먼의 작품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월트 휘트먼은 기존의 전통적인 시의 틀을 깨고 형식을 파괴한 자유시라는 쟝르를 개척했습니다. 그래서 비평과 저항도 만만치 않았죠. 에즈라 파운드 역시 영국에 거주하며 휘트먼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휘트먼이 풍기는 미국적인 분위기가 싫었고, 라임도 없고 율격도 없는 데다가 너무 말이 많아 전혀 절제되어 있지 않은 그의 시는 사실 시가 아니었던 거죠. 그러니 파운드가 보기에 휘트먼은 사실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좀 그랬을 겁니다. (사실 이건 전통적인 시작법에 익숙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당대 사람들이 거의 동일하게 느꼈던 바이기도 했구요.)

 

그런데 다시 보니 이미 모든 형식이 완결되어 끝나버린 것 같은 전통적인 시와는 달리 완전히 새로운 쟝르를 개척한 휘트먼이라는 거인이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죠. 결국 휘트먼과 더불어 새로운 시의 영토를 함께 개척해 나가겠다는, 그리고 나아가 휘트먼을 뛰어넘고 싶다는 파운드의 의지를 드러난 시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 자체에 대해 조금만 언급하자면,

 

첫 행은 굉장히 업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다음에는 가족 같은 느낌으로,

그 다음에는 친구요, 동료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는 다시 업무적으로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건 마치 면접 보러 갔는데 인사를 나누고 보니 친척이라 근황 얘기 하다가 짧게 용무를 보고 끝내는 듯한공과 사를 섞어놓은 듯한 그런 시입니다.

 

여기서 해석이 어려운 부분은완고한 아버지”(직역하면돼지 대가리를 가진”^^)라는 표현인데, (1) 파운드의 실제 부모(아니면 정신적인 부모)로 볼 수도 있고, (2) 시인의 계보상 휘트먼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라 완고한 아버지 같았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3)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무지개 Rainbow”에서 나온 표현처럼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라는 점에서 자기 자신의 시인으로서의 성장했다는 점을 은유적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해석도 사람마다 다른데요. 예를 들면황소 고집쟁이 아버지 같은 당신을 친구 삼을 만한 사람이 되었단 말이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696613)로 해석한 분도 있고, “나는 고집스런 아버지를 가진 다 큰 아이로 당신에게 갑니다” (https://blog.naver.com/beauzard/40012106586)라고 해석한 분도 있습니다.

 

Ezra Pound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게 엘리엇이긴 한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영문학한 사람들에겐 너무...

blog.naver.com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696613)

 

news.kmib.co.kr

 

저는 그냥 영어구문대로 직역을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2) (3)을 함께 놓고 중의적으로 이해하는 게 맥락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고집불통이었던 당신이 이제 이해가 되기 때문에 당신을 친구 삼기 위해 왔소라고 말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당신의 시를 거들떠 보지도 않을 정도로 완고했던 내가 성숙한 시인이 되어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당신을 친구 삼기 위해 왔소라고 동시에 선언하고 있는 거지요. 휘트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하지 못한 자기를 비판하는 하면서, 시적인 전통에 충실하지 않으려 했던 휘트먼을 꼬집은 것이기도 하죠.

 

이 표현 자체가 굉장히애매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파운드의 휘트먼에 대한 양가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표현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시를 읽을 때는 역시 이런 맛이…^^)

 

이 시를 발표한 게 1916년인데, 이에 앞서 1909년 파운드는내가 월트 휘트먼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라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그에 대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부분적으로만 한번 볼께요.

 

“대서양 건너편에서 나는 처음으로 휘트먼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미국의 시인이라고 본다조금 더 좋게 말한다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미국 시인이라고 관습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시인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미국이다. 그의 글의 조잡함이란 어머 어마하게 악취가 나지만 그게 미국이다그는 역겹다. 그는 진짜로 메스꺼운 알약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완벽한 인간이라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이상 아니면 그리스의 이상주의로부터 해방되어 그는 자기 자신임에 만족했다. 그래서 그가 바로 그의 시대이고 그의 백성이다. 그는 천재였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또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고전적으로 완결된 작업이 아닌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마치 단테처럼, 그는 새 율격으로, 저속한 언어로 시를 썼다. 그는 민중의 언어로 글을 쓴 최초의 위대한 인물인 것이다. 나라면 페트라르카처럼 썼을 것이고(Et ego Petrarca in lingua vetera scribe), 그 언어를 민중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https://poets.org/text/what-i-feel-about-walt-whitman

 

What I Feel About Walt Whitman | Academy of American Poets

From this side of the Atlantic I am for the first time able to read Whitman, and from the vantage of my education and—if it be permitted a man of my scant years—my world citizenship: I see him America's poet. The only Poet before the artists of the Car

poets.org

 

여기서 나라면 페트라르카처럼 썼을 것이고에 해당하는 표현은 영어없이 라틴어로만 썼습니다. 영어로 편하게 읽다가 갑자기 설명도 없이 라틴어가 등장합니다. 라틴어를 모른다면 황당하죠. 대부분의 민초들은 라틴어가 뭔지 당연히 몰랐을 테구요. 이것은 단테가 이태리어로 신곡을 쓴 것과 휘트먼이 대중적인 영어로 시를 쓴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페트라르카와 자기 스타일에 비교해서 하는 말입니다. , 자신이라면 대중이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을 테지만 휘트먼 당신은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했다. 나름 훌륭하다. 이런 의미죠.

 

어떠세요. 읽고보니 파운드가 휘트먼을 칭찬한 건지 욕한 건지 헷갈리시죠. 아무튼 요약하자면, 휘트먼은 미국적이라는 점에서 미국을 대변한다. 유럽의 모든 전통과 격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된 미국처럼, 그는 유럽의 전통적인 율격과 운율 등에 얽매여 있는 시 쓰기로부터 벗어나 완전 자유롭게 산문처럼 시를 쓴 미국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세련된 상류층의 언어가 아니라 대중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고, 그런 점에서 다시 한번 미국적이다. 그러니 휘트먼이 바로 미국이다.

 

더 짧게 요약하면, 시의 스타일에 개인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시를 통해 휘트먼이 이룩한 업적은 시대적인 상황에서 보면 어마어마했다. 아마 이런 소리인 것 같습니다.

 

이걸 다시 비유적으로 말하면, 목조각가 파운드가 나무꾼 휘트먼에게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진짜 좋은 나무를 구해다 줘서 고맙다, 너 대단하구나! 하지만 뭘 조각할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라고 감사하며 그 재료 좀 써보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겁니다.

 

, 암튼 잘 했고 감사하다는 거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