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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삶

099_Autumn by T. E. Hulme(1883~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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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먼의 시를 한 편 더 읽기 전에 오늘은 자유시에 대해 잠깐 보겠습니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자유시란 정하여진 형식이나 운율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루어진 시라고 하네요. 최초의 자유시라고 했을 때 영국인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우리에게 에즈라 파운드를 통해 잘 알려진) 이미지즘 운동을 태동시킨 흄(T. E. Hulme) 입니다. 흄은 런던에서 몇몇 동료들과 함께 구약성서 시편과 아가서의 시,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 그리고 일본 하이쿠가 사용한 이미지 기법과 그걸 표현한 간결한 언어, 그리고 정형성을 탈피한 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는데, 이 정형성을 탈피한 시가 자유시였습니다. 그리고 이 논쟁에 에즈라 파운드가 가세하면서 소위 이미지즘이라고 하는 시 운동이 시작됩니다.

 

에즈라 파운드는 1912 25편의 시를 모아 리포스티스 Ripostes(Riposte는 재치있는 응수나 반격을 말합니다)라는 시 선집을 출판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시 선집에서 파운드는 이미지스트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최초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읽었던 지하철 역에서 그 다음해인 1913년에 발표되었어요.) 그런데 이 시집에는 일부분을 할애 해서 T. E. 흄의 시 전작품 The Complete Poetical Works of T. E. Hulme이라는 제목으로 흄의 시 다섯 편을 소개합니다. 여기에 소개된 시 가운데 가을 Autumn 보며 자유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Autumn

     by T. E. Hulme

 

A touch of cold in the Autumn night
I walked abroad,
And saw the ruddy moon lean over a hedge
Like a red-faced farmer.
I did not stop to speak, but nodded,
And round about were the wistful stars
With white faces like town children.

 

https://poets.org/poem/autumn-3

 

Autumn by T. E. Hulme - Poems | Academy of American Poets

T. E. Hulme, one of the founders of the imagist movement, was born on September 16, 1883, in Endon, England. He was killed in action during World War I on September 28, 1917.

poets.org

 

가을

     - T. E.

 

가을밤의 차가운 촉감---
밖을 나서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 위에 기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 붉은 농부처럼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는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었다.
도회지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     

(문학평론가) 정규웅 옮김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Ft8o&articleno=6662052&categoryId=245204®dt=20080708181323

 

T(homas) E(nerst) Hulme (1883-1917)

Autumn                      T. E. Hulme A touch of cold in the Autumn night -- I walked abroad, And saw the ruddy moon lean over a hedge Like a red-faced farmer. I did not speak,..

blog.daum.net

 

이 시는 1908년에 쓰여졌는데요, 자유시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번째는 운율(rhyme)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테니슨 Tennyson독수리 비교를 좀 해 볼게요.

 

 

알프레드 테니슨의 독수리 잘 짜여진 압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2 6행이 aaa bbb로 호응하거든요. 게다가 stands vs falls, lands vs walls hands vs crawls도 의미상 좋은 대조를 이루죠. 게다가 1~2행에는 cl.. crcrcl 와 같은 식으로 두운(alliteration, 랭스턴 휴즈의 Cross에서 봤죠!)도 들어갑니다. 진짜 깔끔하고 잘 짜여진 건축물을 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흄의 시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hedge는 흰바탕에 노란색이 잘 안보여서 검정색으로 바탕을 채웠습니다. 다른 의도는 없구요.)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죠. 율격(metre, meter)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거든요. 율격이라고 하는 것은 시를 쓸 때 전체의 구도와 같아서 강세를 어떻게 둘 것인지 몇 음절로 한 행을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각 행 앞 괄호 안에 넣은 숫자가 그 행의 음절 수입니다. 독수리 각 행이 8음절로 이루어져 있고 약강약강의 리듬으로 읽습니다. (물론 3행은 조금 다릅니다. 첫 단어의 강세가 첫 음절에 들어가 있거든요. 안 그러면 읽을 때 매우 이상하구요. 워즈워드의 초원의 읽을 때 잠시 말씀 드렸지만, 시를 읽을 때 리듬이 느껴지게 읽어야 하지만 율격에 파묻혀 읽을 필요는 없거든요.)

 

시의 각 행은 2음절 혹은 3음절 단위로 몇 번을 반복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명칭을 부여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읽은 시는 대개 2음절 단위로 읽는 시였으니 이걸 기준으로 이야기 해 볼게요. 2음절로 끊는 단위가 바로 율격 meter입니다.

 

각 행이 4음절로 되어 있으면 다이미터(di-meter, di가 둘이라는 뜻입니다), 6음절의 행은 트라이미터(tri-meter, 트라이앵글할 때 그 tri입니다), 8음절은 테트라미터(tetra-meter, 테트리스의 그 테트라인데 4라는 뜻이구요), 2음절씩 5번 반복하는 10음절의 행은 펜타미터(penta-meter, 미국 국방성인 펜타곤의 그 펜타입니다. 5라는 뜻이죠)라고 합니다.

 

독수리 테트라미터 즉 8음절의 약강조(이걸 Iamb라고 합니다)의 율격을 갖는 시입니다. 그래서 아이앰빅 테트라미터(Iambic Tetrameter)라고 표현하는 것이고, 그러면 독자는 이 시의 구도를 한번에 파악하고 시인의 의도에 따라 읽는 거죠. 이에 반해, 가을에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그냥 수필처럼 읽는 시예요.

 

하지만 형식은 없어도 이 시가 이미지스트들이 추구하던 시의 모습을 얼마나 충실히 보여주는 지는 그냥 읽기만 해도 알겠죠. 사족이 없는 간결한 언어로 자연과 사람의 모습을 포착해서 그대로 제시하는 방식은 우리가 이미 에즈라 파운드의 파리 지하철 역에서 읽을 때와 완전 똑 같은 느낌이죠.

 

이 시 가을 나타난 직유(simile)에 대해 조금만 더 말씀 드리자면, 화자는 어느 가을 저녁 걸어서 도시를 벗어납니다(walk abroad). 그런데 불그레한 달이 마치 가을볕에 익은 농부의 얼굴처럼 보입니다. 사실 달빛과 농부의 얼굴이 어떻게 비교대상이 될 수 있을까 싶습니다만 바로 그렇기에 흄의 직유가 탁월한 것 같습니다. 가을달은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추석 보름달입니다. 이렇게 보면, 가을은 추수하는 계절이고, 추수는 농부의 몫이고, 그 계절에 뜨는 달이 가을 달이니, 불그레한 가을 달과 추수로 그을린 붉은 농부의 얼굴이 한 울타리를 통해 보이며 겹쳐지게 되는 거죠.

 

반면에 별은 (노동 후에 울타리에 기댄 꿀 같은 휴식이 아니라) 그저 생각에 잠긴 채 허옇게 반짝입니다. 마치 얼굴이 허옇기 때문에 창백해 보이는 도시 사람들처럼요. 이처럼 생각에 잠긴 허연 별 빛 vs 울타리에 기댄 불그레한 달빛, 도회지 아이들의 창백한 얼굴 vs 추수한 농부들의 불그레한 얼굴. 너무 잘 대조가 되죠. 추수한 농부의 얼굴에 겹쳐 보이는 불그레한 가을 달이 너무나 건강하고, 생기있고, 역동적이며, 열정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이런 자유시는 정해진 형식이나 운율에 구애받지 않고 막(?)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로버트 프로스트 같은 시인은 자유시란 네트를 내리고 테니스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프로스트에게 자유시란 쉬워도 너무 쉬운 거죠. 하지만 과연 그런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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