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찰하는 삶

161_悔之養心 如糞之壅苗 회지양심 여분지옹묘

728x90

悔之養心 如糞之壅苗

 

회지양심 여분지옹묘

 

뉘우침이 마음을 길러주는 것은 똥이 싹을 북돋우는 것과 같다 

 

                                                                [여유당전서_문집_13_()_매심재기(每心齋記)]

 

--------------------------------------------------------------------

悔 회(뉘우치다)

養 양(기르다)

如 여(같다, 같게 하다)

糞 분(; 거름)

壅 옹(막다; 북을 돋우다)

苗 묘(, 모정; 핏줄; 곡식)

---------------------------------------------------------------------

 

정약용은 둘째 형인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을 어린 시절부터 잘 따랐다고 합니다. 또 힘든 유배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손암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하구요. 그리도 좋아하고 존경하고 의지하며 따랐던 정약전이 사망하자 다산은 이런 글을 씁니다.

 

외로운 천지 사이에 우리 손암 선생만이 나의 지기였는데, 이제는 잃어버렸으니, 앞으로는 비록 터득하는 바가 있더라도 어느 곳에 입을 열어 함께 말할 사람이 있겠느냐.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차라리 진작에 죽는 것만 못하다. 아내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자식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형제 종족들이 모두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처지에 나를 알아주던 우리 형님이 돌아가셨으니, 슬프지 않으랴.” (다산시문집_21_기이아_병자 6 17)

(http://blog.daum.net/sugho610/2639)

 

정약용의 또 다른 멘토, 정약전

실학사상의 집대성자로 추앙받는 정약용(丁若鏞, 1762~1836). 그에게는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 두 명의 멘토(Mentor)가 있었다. 한 명은 일찍이 정약용을 인재로 알아보고 깊은  신임을 주었던 조선

blog.daum.net

 

자식이나 아내가 들으면 무척이나 서운하겠지만 이게 다산의 본심이었나 봅니다.^^

오늘 구절과 관련한 일화도 정약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약전이 자신의 서재를 매심재每心齋라 이름한 후에 그것에 대한 기문記文을 정약용에게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 부탁으로 쓰게 된 글이 오늘 구절이 포함된 매심재기每心齋記입니다. 내용이 좋으니 전체적으로 인용을 하겠습니다.

 

 

둘째 형님이 소내[苕川]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서재를매심(每心)’이라 이름하고 나에게 기문을 짓게 하면서 말했다.

 

매심이란 뉘우침[]이다. 나는 뉘우침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항상 마음속에 뉘우침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을 지녀 이러한 이유로 서재에 이름을 붙였으니, 네가 이것을 기록하라.’

 

내가 듣자니, 사람은 형체와 기운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허물이 없을 수 없다. 성인과 미치광이의 차이는 오직 뉘우치느냐 뉘우치지 못하느냐에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윤(伊尹)의 말에미치광이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성인도 생각하지 않으면 미치광이가 된다.’라고 하였으니, 생각한다는 것은 뉘우침을 말한 것이다. 공자(孔子)주공(周公)과 같이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라고 말하였으니, 인색하다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공자는하늘이 나에게 몇 년의 수명을 연장해 주어서 끝내 《주역(周易)》을 배우게 한다면 거의 큰 잘못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공과 공자 같은 성인은 뉘우칠 만한 허물이 없을 것 같은데도 그들의 말이 이와 같았으니, 하물며 일반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성인은 근심이 있을 때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뉘우쳤다이것으로 살펴보면 성인은 뉘우침이 없는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성인이면서 뉘우침이 없다면 성인은 우리 인류가 아닐 것이니, 어찌 사모할 것이 있겠는가. 안자(顔子)가 인()한 이유는 허물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로(子路)가 용맹한 이유는 자신의 허물에 대해 듣기 좋아해서였다. 진실로 허물을 뉘우친다면 허물이 과오가 되지 않는다. 둘째 형님이 서재를 이름하신 것은 그 뜻이 어찌 크지 않겠는가.

 

다만 뉘우침에도 방도가 있다. 만약 한 번 밥을 먹는 사이에 불끈하며 분발하려 애를 쓰다가 얼마 뒤에 뜬구름이 허공을 지나간 것처럼 잊어버린다면 이것이 어떻게 뉘우치는 방도겠는가. 작은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는 고치고 나서 잊어도 괜찮지만 큰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는 비록 고치더라도 단 하루도 그 뉘우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뉘우침이 마음을 길러 주는 것은 거름이 벼 싹을 배양하는 것과 같다(悔之養心 如糞之壅苗). 거름은 썩고 더러운 풀로 만들어지지만 배양하면 훌륭한 곡식을 자라게 하고, 뉘우침은 죄와 허물에서 비롯하지만 기르면 덕성(德性)을 완성하니, 그 이치가 똑같다.

 

내가 뉘우쳐야 하는 잘못은 둘째 형님에 비하면 만 배가 될 것이니, 이것을 빌려다가 나의 서실에 이름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이것을 마음에 두고 있으니, 그렇다면 나의 서실에 이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매심재기 [每心齋記] (여유당전서 - 시문집 (산문) 13, 강미희, 박석무, 송재소, 임형택, 성백효)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75721&cid=62811&categoryId=64849

 

매심재기

정약용이 둘째 형 정약전의 서재인 매심재에 대해 쓴 기문이다. 정약전은 항상 뉘우치는 마음을 가지겠다는 의미에서 소내에 있는 서재에 ‘매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약용은 사람 중에는

terms.naver.com

 

여유당전서를 비롯해 한국 고전을 모아놓은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이라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아래 주소는 매심재기원문이 실려 있는 곳입니다.

https://db.itkc.or.kr/dir/item?itemId=GO#/dir/node?dataId=ITKC_MP_0597A_0130_020_0220&solrQ=query%E2%80%A0%E6%AF%8F%E5%BF%83%E9%BD%8B%E8%A8%98$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GO_AA$solr_toalCount%E2%80%A01$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GS_ITKC_MP_0597A_0130_020_0220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

 

똥을 밑거름으로 돋아 올라오는 싹이라는 표현이 큰 용기를 줍니다. 후회는 아쉽고 안타깝지만 우리를 더 자라게 해 주기 때문이지요. 구래공이나 성호의 육회명도 주자의 십회훈도 모두 이 분들을 자라게 해 준 자양분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제 일에 대한 후회가 오늘을 살아가는 양분이 되어 더 자라있을 내일을 기약하는 그런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