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위원회는 1913년 타고르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완벽한 기량으로, 심오하도록 민감하며 신선하고 아름다운 구절을 자신의 영어로 표현하여, 자신의 시적 사상을 서양문학의 일부가 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선정의 이유를 밝힙니다. 타고르가 서양인들에게 짧은 시간에 얼마나 환영 받았는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죠.
우리나라 시인가운데서도 타고르의 영향을 깊이 받은 시인이 한 분 계시죠. 바로 만해 스님입니다. 그의 연작 “님의 침묵”은 타고르의 시 “정원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서가 이 시를 “원정”(우리가 아는 “정원garden”이라는 한자의 순서만 바뀐 표현입니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발간한 해가 1924년, 만해가 “님의 침묵”을 발간한 것이 1926년이거든요. 그래서 둘의 관계를 비교하는 논문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늘 언급되는 시가 바로 만해의 “타고르의 시(詩) GARDENISTO를 읽고” 입니다. 먼저 만해의 시를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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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의 시(詩) GARDENISTO를 읽고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의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님의 침묵/타고르의 시 GARDENISTO를 읽고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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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만해가 읽고 시로 후기를 남긴 “정원사”에 실린 85편의 시 가운데 마지막 85번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The Gardener 85
by Rabindranath Tagore
Who are you, reader, reading my poems an hundred years hence?
I cannot send you one single flower from this wealth of the spring, one single streak of gold from yonder clouds.
Open your doors and look abroad.
From your blossoming garden gather fragrant memories of the vanished flowers of an hundred years before.
In the joy of your heart may you feel the living joy that sang one spring morning, sending its glad voice across an hundred years.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5667/the-gardener-85
정원사 85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그대는 뉘시오, 독자여,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시를 읽고 있으니?
나는 그대에게 보낼 수 없다오, 이 풍요로운 봄에 피어난 단 한 송이의 꽃도,
저 멀리 구름 사이로 비추는 한 줄기 금빛 햇살도.
그대여, 문을 열고 밖을 보시오.
그대의 만개한 정원에서 백 년 전 사라져간 꽃의 향기로운 기억을 모아보시구려.
그대는 아마 기쁜 마음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터이니,
백 년의 세월너머로, 반가운 목소리로, 어느 봄날 아침을 노래했던 그 기쁨을.
(크… 직역에 의역에... 혼역이 되어버렸네요. 이래서 번역은 전문가에게…)
타고르는 이 시집의 맨 앞에 “예이츠에게 To W. B. Yeats“라고 써서 이 작품을 예이츠에게 헌정합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랑과 인생을 노래한 서정시로 기탄잘리에 실린 종교적인 연작시보다 훨씬 더 어린 시절에 벵갈어로 썼던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시집을 안서가 번역하고, 그걸 다시 만해가 읽고, 그리고 자신의 삶의 자리로 끌어들여 그 후기로 시를 쓴 거죠.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벵갈 출신의 시인이 점령국인 영국의 시인들과 교감하고, 그것이 세계로 퍼져 나가며 바다를 건너건너 한반도에 이르고. 거기서 또 다른 점령지 문인들에게 시상을 주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 시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읽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투적인 경구로 표현하자면 확실히 “글이 칼보다 강”한가 봅니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후기)
사실 오늘 시를 선택할 때 고민이 아주 많았습니다. “정원사”는 함께 떠날 수 없어 정원사로라도 남아 사랑하는 이를 보고 싶은 소망을, 부분적으로 새장 속의 새와 새장 밖의 새로 비유해 쓰고 있는 연작시입니다.
새장 안은 편하지만 자유가 없으니 밖으로 나가자고… 새장 밖엔 따듯한 집도, 쉴 잠자리도 없고, 희망도 없지만 한 쌍의 날개와 날 수 있는 무한한 하늘이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 날개를 접지 말라고… 노래하는 67번이 전체 시의 격정을 너무 잘 표현해 주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결국 100년 뒤에 읽는 우리를 생각하며 (그리고 결정적으로 훨씬 더 짧아 필사가 쉬울 것 같아^^) 마지막 시인 85번으로 골랐습니다.
하지만 그냥 끝내기가 아쉬워서 67번에 대한 번역과 짧은 단상을 가지고 예전에 서울대 종교학과에서 가르치셨던 정진홍선생께서 쓴 글을 옮겨 놓은 블로그가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aram2557&logNo=140000228129
타고르 시집 《정원사》 - 정진홍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을지라도 정 진 홍 타고르 시집 《정원사》 저는 조금 어려운 젊은 시절을 지냈습니...
blog.naver.com
Gardener 67
Though the evening comes with slow steps and has signalled for all songs to cease;
Though your companions have gone to their rest and you are tired;
Though fear broods in the dark and the face of the sky is veiled;
Yet, bird, O my bird, listen to me, do not close your wings.
That is not the gloom of the leaves of the forest, that is the sea swelling like a dark black snake.
That is not the dance of the flowering jasmine, that is flashing foam.
Ah, where is the sunny green shore, where is your nest?
Bird, O my bird, listen to me, do not close your wings.
The lone night lies along your path, the dawn sleeps behind the shadowy hills.
The stars hold their breath counting the hours, the feeble moon swims the deep night.
Bird, O my bird, listen to me, do not close your wings.
There is no hope, no fear for you.
There is no word, no whisper, no cry.
There is no home, no bed for rest.
There is only your own pair of wings and the pathless sky.
Bird, O my bird, listen to me, do not close your 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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