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外重者 內拙 범외중자 내졸
무릇 외물(外物)을 중시하는 경우에는 내면의 마음이 소홀하게 된다.
(장자_내편_19. 달생_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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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 범(무릇)
拙 졸(옹졸하다; 둔하다; 서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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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절을 그냥 읽어보면,
“요즘은 외양에 온 정성을 쏟는 사람들이 전례없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여지는 것, 보는 것에 신경을 쓰는지 너무나 잘 알게 되죠. 그렇다고 그게 나쁜 것은 아니고, 우리 시대의 특징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단지 너무 외양에만 힘쓰다가 지쳐 내면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이렇게 말하며
“그래서 장자께서는 범외중자내졸 凡外重者內拙이라는 말을 하신 것”이라고 마무리하면 깔끔해 보이죠!
그런데 이런 의미로 읽으면 오늘 구절 바로 앞에 나오는 구절들과 내용상 일관성을 잃게 됩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거든요.
“물건을 던져서 승패를 겨루는 던지기 놀이를 하는 경우에 별 가치가 없는 기왓장을 경품으로 걸고 던지는 경우에는 승부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아주 잘 던지고, 이보다 가치가 있는, 은銀이나 동銅으로 만든 혁대고리를 걸고 던지는 경우에는 마음이 약간 떨려 두려워하고, 황금을 걸고 던지는 경우에는 완전히 마음이 어두워져 혼란에 빠져 잘 맞추지 못한다. 그런 까닭은 기술은 같은데 놓치면 아깝다고 생각하는 집착심이 있게 되면 외물外物을 중시하여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무릇 외물(外物)을 중시하는 경우에는 내면의 마음이 소홀하게 된다 (凡外重者內拙).”
가톨릭의 영성가 가운데 토마스 머튼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전에 시를 읽을 때도 한 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 이 분이 재미있는 책을 썼습니다. The Way of Chuang Tzu(장자의 도)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장자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골라 제목을 붙이고 일부 가필을 해 시처럼 읽을 수 있게 써서 출판을 했는데, 우리나라에는 2004년 ‘장자의 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머튼은 이 책에서 (비록 전문을 번역한 것은 아니고 또 일부 가필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의 본문을 영어로 너무나 유연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기려는 욕구
궁수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활을 쏠 때,
그는 자신의 기술을 맘껏 발휘한다.
만일 그가 놋쇠로 된 혁대 고리를 바라고 쏘면
그는 이미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가 금상을 걸고 활을 쏜다면
앞이 보이지 않게 되거나
아니면 과녁이 두 개로 보이게 된다.
- 그는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
그의 기술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상賞이
그를 나눈다. 그는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는 활을 쏘는 것보다
승리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한다.
이기려는 욕구는 그로부터 능력을 빼앗아 간다.”
이렇게 읽는다면 사실 오늘 구절의 핵심내용은 지극한 경지에 이르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몰입’ 내지 외적 조건에 대한 ‘망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내용을 계속 읽어 볼게요.
어느 날 안연이 공자에게 배를 모는 솜씨가 너무나 뛰어난 뱃사공을 만났던 일화를 언급하며 질문을 합니다. 안연은 사공에게 배를 젓는 일은 배우면 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사공은 헤엄을 잘치는 사람이 배를 젓는 것도 빨리 익힐 수 있고, 잠수부 같은 사람은 심지어 배를 보지도 않고 저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하며 이게 무슨 이유에서 그런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공자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 빨리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물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수부 같은 사람이 배를 한 번 보지도 않고 바로 배를 저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깊은 연못을 마치 언덕과 같이 보고 배가 뒤집히는 것을 마치 수레가 후진하는 정도와 같이 여기기 때문이다. 전복과 퇴각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더라도 그것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니, 어디에 간들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결국 요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무슨 일을 하든지 지극한 경지에 오를 수 있고, 그래야 그런 경지에 도달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사실 이기고 지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아마 당연히 이기겠죠!)
자!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뭘 가장 크게 의식하고 계십니까? 그저 하는 일에 몰입하신 채, 다른 (소소한 혹은 대가로 주어질 굉장한, 그도 아니라면 잘 안됐을 경우를 가정하며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수 많은) 것들은 잊어버리세요! (저한테 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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