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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하는 삶

171_山中問答 산중문답 (이백, 70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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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中問答 산중문답

                 이백 (李白, 701~762)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나더러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사냐길래

웃으며 대답 않았지만 마음만은 한가롭다.

복사꽃이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내려가니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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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 여()

棲 서(살다)

碧 벽(푸르다)

閑 한(한가하다)

桃 도(복숭아나무)

杳 묘(아득하다)

別 별(나누다)

杳然 묘연(아득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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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唐) 시인 이백의 시로, 《이태백문집(李太白文集)》에 실려 있습니다. 앞에서 한 번 소개해 드린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라는 책, 열 다섯 번째 이야기인 ‘울림이 있는 말’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정민 선생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황희가 정승이 되었을 때, 공조 판서로 있던 김종서는 태도가 자못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의자에 앉을 때도 삐딱하게 비스듬히 앉아 거드름을 피웠다. 하루는 황희가 하급관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김종서 대감이 앉은 의자의 다리 한쪽이 짧은 모양이니 가져가서 고쳐 오너라.’

 

그 한마디에 김종서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크게 사죄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뒷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육진에서 여진족과 싸울 때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오는 속에서도 조금도 두려운 줄을 몰랐는데, 그때 황희 대감의 그 말씀을 듣고는 나도 몰래 등 뒤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흘러내렸었네.’

 

정색을 한 꾸지람보다 돌려서 말한 한 마디가 거만하기 짝이 없던 김종서로 하여금 마음으로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게 했다.

 

말의 힘은 이런 것이다. 돌려서 말한 은근한 한마디가 자세히 되풀이해서 설명하는 긴 말보다 백배 낫다. 직접 대놓고 얘기하면 불쾌할 말도 넌지시 돌려서 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나 이런 것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마음의 여유와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한 단락 이후에 오늘의 시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산에서 사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불쑥 묻는다.

 

왜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사십니까?’ 나는 싱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산이 좋아서 사는 사람에게 산에 사는 이유가 달리 있을 까닭이 없다. 산이 좋은 까닭을 말로 설명할 재주도 없지만, 말한다 한들 그가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답답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한가롭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강물 위에는 복사꽃이 둥둥 떠내려간다. 인간 세상에는 달리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도 그는 나더러 왜 답답하게 산속에서 혼자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웃는 것 외에는 대답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침묵의 언어가 지닌 힘이다.”

 

이 시는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도 소개가 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고 여러 사람들이 번역을 한 시인데 이런 번역도 있습니다.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천지일세, 인간 세상 아니네

 

이 시와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노장사상으로 대변되는 도교와의 관련성은 세 번째와 네 번째 구절의 복사꽃별천지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를 보면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복사꽃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별천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암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말하지 않은 시인의 답이기도 하죠.

 

장자를 통해 이백의 생각과 행동을 조금 더 대변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분별이란 분별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존재하며, 논쟁이란 논쟁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논쟁이란 대개 자신이 보지 못하는 면 때문에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위대한 도는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고, 위대한 이론은 말을 할 필요가 없으며, 가장 위대한 사랑을 행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고, 가장 청렴한 사람은 청렴하고 겸손한 모습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으며, 가장 위대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절대 남을 해치지 않는다. 진리가 외적으로 완전히 드러난다면 이것은 진리가 아니며, 말로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 항상 사랑하는 모습만 드러낸다면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없고, 청렴함이 너무 드러난다면 오히려 신뢰감을 가질 수 없으며, 너무 용감해서 가는 곳마다 남을 해롭게 할 정도라면 그는 진정 용감한 사람이 아니다. 이 다섯 가지 상황은 마치 마음은 동그라미가 되기를 소원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네모에 더 가까워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혜로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나 자신을 멈추는 법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지극한 지혜다.” (장자_2_제물론_2)

 

말로는 반드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죠. 표현을 하는 순간에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말이 말을 만들어 점점 거창해지죠. 거기서 무언가 더 이야기하려 한다면 동그라미를 그리려는 의도와는 달리 네모가 되고 만다는 것을 이백은 알았던 것이겠죠. 그래서 그는 답을 하지 않고 멈춰 서서 그저 웃었을 뿐이고 (지극한 지혜를 지닌 사람이었겠죠!), 답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한가로울 수 있었던 것이죠.

 

(위 번역은 시그마북스에서 출간한 위단의 장자심득이라는 책의 부록으로서 무료 제공된 원문과 번역자료에 있는 내용에서 가져왔습니다. 제가 지금 읽을 수 있는 역본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언어로 풀이해 놓았네요. 다음 사이트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sigmabooks.co.kr/notice.php?ptype=view&idx=5382)

 

시그마북스

『장자』원문과 번역 자료 첨부 파일입니다.

www.sigmabook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