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聽吟 천청음
天廳寂無音 천청적무음
蒼蒼何處尋 창창하처심
非高亦非遠 비고역비원
都只在人心 도지재인심
하늘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어
푸르고 푸른데 어디에서 찾을까
높지도 않고 멀지도 않아
사람의 마음이 그 곳이라네.
(伊川击壤集 이천격양집_ 邵康節 소강절, 명심보감_천명_2)
이 구절은 소강절이 지은 ‘이천격양집’에 실린 ‘천청음(天聽吟)’이라는 제목의 오언절구(五言絶句) 입니다. 소강절은 중국 북송 때의 사상가로 이름은 옹(雍)이고 강절(康節)은 그의 호입니다. 그가 지은 ‘이천격양집’에는 천 오백여 편의 시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 사실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 소강절은 모든 만물은 태극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사람의 마음이 곧 태극이 되고 도가 곧 태극이 된다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2. 명심보감에서는 이 시를 ‘천명’편에 싣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지식을 근거로 오늘 구절을 읽으면, ‘하늘은 말이 없어서 그 뜻이 무엇인지(천명) 알 수 없지만 모든 만물이 시작되는 태극이 곧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을 따르면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다’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남들은 모르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시간이 흘러서도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고백하는 것 등등 흔한 사례를 통해 이 시의 의미를 어느 정도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해석이 시인에 대한 배경지식을 근거로 본문을 분석한 것이라… 적용은 좀 다르게 해 보고 싶습니다.
매년 겨울이 되면 더 추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라면 사회취약층은 버티는 것 자체가 생존의 문제죠. 몸은 춥기만 하고 맘은 점점 얼어 붙고… 그러면 가끔씩 하늘을 우러러 보며 탄식을 할 겁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본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르면 서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심지어는 얄밉기도 하죠. 그리고는 어느새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을테구요.
하지만, 그렇게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소리 죽여 원망할 때, 옆으로 눈을 돌리면 높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서 마음을 하늘처럼 활짝 열고 따스함을 나누어 주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겨울이 더 따뜻하기만 하죠.
칼 샌스버그(Carl Sandburg, 1878~1976)의 “행복”이라는 시를 읽을 때 인용했던 구절입니다. “행복은 우는 사람들과 상처입은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데, 그 이유는 그런 사람들만이 그들의 삶에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Happiness only happens for those who cry and those who hurt, for only then can they appreciate the importance of people who touch their lives).” 우는 사람들과 상처입은 사람들의 삶에 감동을 주는 사람들. 천명을 따르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뭐… 이렇게 이해하고 삶에 적용해 보는 것도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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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공맹에서 사군자까지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체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경전들과 글들을 읽어 보았는데, 마지막으로 김낙행의 수필을 통해 (천명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선비들이 가지고 있던 소박하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엿보도록 할게요.
“집사람이 그저 밥이나 축내면서 빈둥거리는 내가 답답하였던지 처가 형제들에게 자리 짜는 재료를 얻어다가 나에게 자리라도 짜라고 성화를 대는 한편 이웃 늙은이에게 자리 짜는 법을 가르쳐 달라 하였다. 내가 하는 수 없이 마음을 누르고 해보니, 처음에는 손에 설고 마음에 붙지 않아 몹시 어렵고 더딘 탓에 하루종일 한 치를 짰다.
이윽고 날이 오래되어 조금 익숙해지자 손놀림이 절로 빨라졌다. 짜는 법이 마음에 완전히 무르녹자 종종 옆 사람과 말을 걸면서도 씨줄과 날줄을 짜는 것이 모두 순서대로 척척 맞았다. 이에 고단함을 잊고 일에 빠져 식사와 용변 및 접객할 때가 아니면 놓지 않았다. 헤아려보건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자는 됨직하니, 잘 짜는 사람에 견주면 여전히 무딘 편이지만 나로서는 크게 나아진 셈이다.
손재주 없고 일에 서툴기로 천하에 나만한 사람이 없거늘 배운 지 한 달 만에 이만큼이나 되었다. 이 기술이 천하의 하찮은 것인 줄은 알겠거니와 내가 하기에는 정말로 맞춤이다. 종신토록 이 일을 한다 하더라도 사양하지 않을 터이니, 분수에 맞기 때문이다.
자리 짜기를 해보니 나에게 이로운 것이 다섯이다. 밥만 축내지 않는 것이 하나요, 쓸데없는 외출을 줄이는 것이 둘이요, 한여름에 더위를 잊고 대낮에 곤히 자지 않는 것이 셋이요, 시름을 어느새 잊고 입을 절로 다무는 것이 넷이다. 만들고 나서 곱게 짠 것으론 늙으신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거칠게 짠 것으론 나와 처자식이 깔며 어린 계집종들도 맨바닥에서 자는 것을 면하게 해 주는 데다, 남은 것으론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다섯이다.”
김낙행(金樂行, 1708~1766)_구사당집(九思堂集)_권8_직석설(織席說)
원문과 번역문은 한국고전번역원이라는 아래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www.itkc.or.kr/bbs/boardView.do?id=75&bIdx=34596&menuId=125&bc=6&bcIdx=6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번역원
www.itkc.or.kr
김낙행은 안동출신으로 조선 후기 영남 사림의 대표적인 인물로 퇴계의 학맥을 이어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지만 평생토록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생계를 유지를 위해 자리 짜기를 해 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남은 것으론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이롭다고 고백하는 그 마음씀씀이가 풍요로우나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저 훈훈하고 대단해 보입니다. ^^ 이 겨울에 마음의 뜻을 따라 ‘천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졌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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