願腰纏十萬貫 騎鶴上楊州 원요전십만관 기학상양주
십만 관의 돈을 허리에 두르고 학을 타고 올라 양주로 가고 싶다.
왜 욕심을 막을 때는 물을 막듯이 꼼꼼하고 철저하게 막으라고 했을까요? 그건 아마 사람의 욕심이 끝도 없다는 것을 근사록의 저자들이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이 구절은 근사록에서 인용한 것이고, 근사록을 지은이가 바로 주희와 그의 제자 여조겸입니다.) 끝도없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양주학楊州鶴”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몇몇 사람이 각자의 소원을 말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양주의 자사(刺史)가 되기를 바랬다. 다른 사람은 재물을 많이 갖기를 원했다. 또 다른 사람은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르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其一人曰 기일인왈). (나는) 십만 관의 돈을 허리에 두르고 학을 타고 올라 양주로 갔으면 좋겠다((願腰纏十萬貫 騎鶴上楊州 원요전십만관 기학상양주). (그는) 세 사람(의 바람)을 겸해서 (모두) 가지기를 원했다(欲兼三者 욕겸삼자).”
----------------------------------------------------
願 원(원하다; 바라다)
腰 요(허리; 신장, 콩팥)
纏 전(얽다; 감다)
貫 관(무게의 단위; 꿰다; 돈꾸러미)
騎 기(말 타다; 걸터앉다)
鶴 학(학; 두루미)
楊 양(버드나무)
欲 욕(하고자 하다, 바라다)
兼 겸(겸하다; 아우르다; 얻다)
-----------------------------------------------------
중국 남조시대, 양(梁)나라 사람 나라 은운(殷芸)의 ‘소설小說,’ ‘권6,’ ‘오촉인(吴蜀人)’에 나오는 이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양주자사는 ‘높은 관직에 올라 권력을 쥐고 싶다’로, 십만 관의 돈은 말 그대로 ‘헤아릴 수 없는 재산을 갖고 싶다’ 로, 그리고 학을 타고 오른다는 것은 ‘명성을 드높이고 싶다’로 읽으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 아무튼지 간에 이 이야기를 보면 인간의 욕심은 지극히 상대적이기에 최저치도 최대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담입니다만,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는 데 장애가 되는 세 가지의 번뇌를 탐(貪), 진(瞋), 치(癡)라고 해서 삼독(三毒)이라고 부릅니다. ‘탐’은 탐욕을 말하고 ‘진’은 분노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치’는 어리석음을 의미합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을 해야 하는 것들이죠. 우리가 읽은 내용 중 두 가지나 들어가 있다는 것이 놀랍죠! 이제 하나만 더 극복하면 우리도 깨달음의 세계에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듯 합니다.
제가 얼마나 욕심을 부리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하루를 살아보겠습니다.
'성찰하는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2_世間楊州鶴無 세간양주학무 (0) | 2021.08.18 |
---|---|
181_固以樹德 直以立身 空以體道 貞以立志 고이수덕 직이립신 공이체도 정이립지 (0) | 2021.08.17 |
179_人能虛己以遊世 其孰能害之 인능허기이유세 기숙능해지 (장자_외편_20.산목山木) (0) | 2021.08.15 |
178_懲忿如救火 窒慾如防水 징분여구화 질욕여방수 (0) | 2021.08.14 |
177_非吾物何 비오물하 (명심보감_염의_2) (0) | 2021.08.13 |